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 마리안느에게 한 소설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죠.
독일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의 대표작 <늦어도 11월에는>, 이 소설에 바로 그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마리안느는 현실 속에 보장된 모든 것을 버리고 소설가 베르톨트를 따라 나섭니다.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그건 소설을 읽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마리안느와 베르톨트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철학적 소설로 읽혀집니다.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은 사르트르와 꺄뮤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작가이기도 했어요. 그는 전쟁을 겪으면서, 또 이념이 사람을 구분하는 시대의 횡포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잃어 본 작가였습니다. 자신을 늘 경계선에 선 인물로 여겼던 한스 에리히 노삭의 소설은 줄거리의 재미만큼이나 그 안의 철학적 깊이가 매력을 느끼게 하죠.
1901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부유한 커피 수입상의 아들로 태어났던 한스 에리히 노삭은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던 학생의 신분을 포기하고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의 노동자로, 회사원으로 자발적인 변신을 합니다. 1933년부터 그는 글을 써 왔는데 그의 작품들은 1943년 연합군의 대대적인 함부르크 공습 때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한스 에리히 노삭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원고를 모두 잃어버린 상실감에서 벗어난 한스 에리히 노삭은 거의 모든 시간을 글 쓰는 일에 바쳤습니다.
1955년, 그는 <늦어도 11월에는>이라는 소설을 발표했고,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비흐너상을 수상했습니다. <늦어도 11월에는>, 이 소설은 제목만으로도 사람을 매혹시키는 소설이죠. 그래서 11월이면 해마다 판매량이 늘어나는 책이라고도 합니다.
소설 속의 11월은 베르톨트가 마리안느에게 작품을 끝내겠다고 약속하는 시점이자, 희망의 시간입니다. 11월, 이 쓸쓸한 달이 과연 베르톨트와 마리안느에게는 희망의 시간이었을까요?
<늦어도 11월에는>, 이 소설 속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슬픔 때문에, 단지 슬프기 때문에 서로를 안게 될 때에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되는 일을 하기가 십상이다. 안 된다. 그게 누구라도 슬플 때에는 서로를 안아서는 안 된다. 하룻밤만 지나도 날이 밝아 길가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 전보다도 훨씬 더 비참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가슴이 철렁해지지 않으십니까? 실존주의 작가들의 우상이기도 했던 한스 에리히 노삭,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독일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제정해서 그의 명성을 기리고 있죠.
<늦어도 11월에는>, 멋진 소설을 남겨 준 독일의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을 11월의 노트에서 만나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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